MIT가 제안하는 분산형 AI란?
2010년대부터 딥러닝 붐이 일면서, AI 산업은 빙대한 데이터와 막대한 자금을 가진 빅테크 기업들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중앙집중식' AI 개발 방식은 효율적일지 모르나 동시에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 측면에서 한 곳에 모든 것을 모으는 방식의 위험성이 부각된다. 최근 몇 년간 일부 대형 기술기업의 데이터 오남용 사건과 의료 정보 유출 해킹 사고 등은 방대한 민감 정보를 단일 기관이 독점적으로 보유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취약성을 보여주었다. AI 시대의 '석유'와 같은 데이터가 특정 기업 서버에 몰리면서 사용자들은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쓰일지 통제하기 어렵고, 사회 전반의 신뢰도 하락을 낳는다.
또한 AI 권력의 집중은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책임성 측면에서도 우려를 낳는다. 실제로 OpenAI나 구글 같은 대형 기업조차 거대한 AI 시스템의 윤리적·사회적 영향에 대해 모든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킬 만한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십억 명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규범을 소수 임원이나 연구진이 좌우하는 구조인 셈이다.
이와 맞물려, AI 기업과 데이터 제공자 간 보상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거대 AI 모델을 훈련시키는 데는 인터넷상의 방대한 텍스트와 이미지 데이터가 쓰이는데, 이를 제공한 개인이나 단체는 별다른 대가를 받지 못한다. 이에 대해 예술가와 언론사 등이 AI 기업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는 등, 한 업체가 타인의 데이터를 무단 활용해 가치를 추출하는 중앙집중 모델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참고로 뉴욕타임스는 2023년 12월, 오픈AI가 기사 수백만 건을 무단으로 도용해 챗GPT를 훈련하는 데 사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자사 생태계에 사용자와 데이터를 붙잡아 두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폐쇄성은 신생 스타트업이나 외부 연구자들의 접근을 막아 AI 분야 전체의 역동성을 떨어뜨린다. 요컨대 현재의 중앙집중적 AI 패러다임은 개인정보 유출 위험과 거버넌스 공백에서부터, 공정한 가치 분배와 생태계 혁신 저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MIT NANDA 연구소가 제시하는 분산형 AI 개념
MIT 미디어랩의 NANDA(Networked Agents and Decentralized AI) 연구팀은 AI 개발의 분산형 패러다임을 제안하고 있다. NANDA에서 최근 발표한 보고서「A Perspective on Decentralizing AI」는 데이터를 비롯한 AI 자산과 의사결정 권한을 한 곳에 몰아넣지 않고 여러 주체에 분산시킨 AI 생태계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핵심 개념은 간단하다. 병원, 은행, 기업, 개인에 흩어져 있는 양질의 데이터 자산을 안전하게 연결하고, 스마트폰·개인용 PC·엣지 디바이스 등에 분산된 소규모 컴퓨팅 파워를 모아 거대한 계산을 수행하며, 더 이상 빅테크가 중앙에서 AI 개발을 조율하지 않고 참여자들이 자율적으로 협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위 그림 좌측의 중앙집중형 AI 상호작용 구조에서는 병원, 기관, 개인 등이 서로 직접 연결되지 못하고, 모든 데이터 흐름과 의사결정이 중앙의 한 기관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참여는 제한되고 혁신 속도는 낮아지며, 각 조직의 정보는 사일로 속에 갇히게 된다.
반면, 분산형 AI 관점에서는 사용자, 의료기관, 다양한 참여자들이 중앙 조정자 없이 서로 직접 연결되고 협력할 수 있다. 여러 노드 간 데이터와 지식이 다방향으로 흐르며, 자율적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네트워크형 구조가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프라이버시 보호, 검증 가능성, 인센티브 체계, 자원 오케스트레이션, 그리고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과 같은 핵심 요소들이 함께 작동해 참여와 가치가 민주적으로 분배된다.
연구진은 이를 일종의 'AI 에이전트의 인터넷'으로 묘사한다. 각 참여 노드들이 웹의 표준 프로토콜을 따르기만 하면 누구나 웹사이트를 개설할 수 있었던 것처럼, 표준화된 분산 AI 프로토콜이 정착되면 크고 작은 다양한 AI 에이전트들이 자유롭게 협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중앙에서 통제하지 않아도 합의된 기술 표준과 네트워크 규칙만 있으면 AI 시스템이 스스로 조직되어 운용될 수 있다는 비전이다.
MIT 보고서는 이러한 분산형 AI를 구현하기 위해 다섯 가지 핵심 요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첫째는 민감한 데이터도 안심하고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프라이버시 보호 기술이다. 둘째는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서로 신뢰할 수 있도록 기여 내용의 검증 가능성(Verifiability)을 확보하는 것이다. 셋째는 각 참여자가 기여한 바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는 공정한 인센티브 구조이고, 넷째는 중앙 관리자 없이도 원활히 작동하도록 하는 분산형 조율(Orchestration) 기술, 마지막 다섯째는 일반 사용자가 복잡한 분산 네트워크에 쉽게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UI/UX)이다.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도 서로 신뢰하고 협력할 수 있는 자율 분산 AI 플랫폼이 되기 위한 기술적 토대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활용 사례
분산형 AI가 특히 유용할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로 의료, 금융, 물류, 도시 교통 등으로 MIT 보고서에서도 이러한 영역에서 데이터 공유의 장벽을 허물고 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 의료 분야: 환자의 민감한 의료정보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력이 크다. 예를 들어 여러 병원이 공동으로 암 진단 AI 모델을 개발하려 할 때, 각 병원의 환자 데이터는 자기 병원에 둔 채 분산 학습을 통해 하나의 모델을 함께 훈련할 수 있다. 실제로 카카오헬스케어가 16개 병원의 암 환자 데이터를 활용해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으로 중앙 서버에 데이터를 모으지 않고도 환자 재발 예측모델의 정확도를 크게 높인 사례가 있다. 이처럼 분산형 접근을 쓰면 개인정보 규제로 그간 활용하지 못했던 의료 빅데이터의 가치를 끌어낼 수 있고, 병원 간 협력도 안전하게 촉진할 수 있다.
- 금융 분야: 은행 간 데이터 공유가 어려운 금융권에서도 분산형 협력의 이점은 크다. 각 은행이 고객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채 프라이버시 보호 연산을 통해 공동의 사기 탐지 모델이나 신용평가 AI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금융회사들은 규제 준수를 지키면서도 업계 공동의 AI 시스템을 구축해 전체적인 사기 탐지 능력이나 리스크 관리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
- 모빌리티 분야: 교통 및 이동 서비스에서도 데이터 분산 협력이 유용하다. 여러 도시의 교통 센서 데이터를 한데 모아 AI로 교통량 예측 및 신호 최적화를 할 때, 각 도시의 주민 이동 데이터는 중앙에 몰리지 않고 각자 보유한 채로 총체적 패턴만 학습하는 식이다. 자동차 제조사와 IT 기업들이 자율주행차 주행 데이터를 서로 직접 공유하지 않고도 함께 활용하는 협업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한 자동차 제조사의 차량 센서 데이터와 다른 기업의 AI 알고리즘을 결합해 전체 자율주행 성능을 높이되, 각사의 원천 데이터나 기술은 노출하지 않는 형태다. 이러한 데이터 은폐 협업을 통해 도로 안전 향상과 교통 인프라 최적화에 기여하면서도, 참여 기업들은 각자의 상업적 비밀을 보호할 수 있다.
- 공급망 및 제조 분야: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들도 생산·재고·물류 데이터를 안전하게 공유하면 수요 예측과 공급망 운영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분산형 AI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제조사가 각자의 공장 데이터를 중앙 모회사에 넘기지 않고도 공동의 품질검사 모델이나 재고 최적화 알고리즘을 구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전자제품 제조사가 자사 생산라인 센서 데이터를 함께 활용해 불량 감지 AI를 개선하되, 원본 데이터는 각자 내부에 둔 채 모델 업데이트만 교환하는 식이다. 이처럼 민감 정보는 숨기고 인사이트만 공유하는 협업이 가능해지면, 업계 전체로는 낭비를 줄이고 혁신을 촉진하면서도 개별 기업은 자사 영업비밀과 경쟁우위를 지킬 수 있다.
AI 분산화가 넘어야 하는 허들
분산형 AI를 실제 현실에서 구현하기까지는 여러 기술적 난관이 존재한다.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프라이버시 보호 기술의 한계다. 개인정보를 가린 채 여러 곳의 데이터를 공동 분석하려면 고도화된 암호화와 분산 컴퓨팅 기법이 필수인데, 현재의 동형암호 등 기술은 계산 비용이 너무 커서 실시간 의료 진단이나 금융 이상 탐지에는 적용이 어렵다. 계산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인 새로운 암호화 기법이나 안전한 다자간 연산 기술이 나오지 않는 한, 민감 데이터의 분산 활용은 일정 부분 성능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신뢰성과 검증도 문제다. 중앙 관리자 없이 수많은 참가자들이 기여하는 시스템에서는, 그 결과의 진위와 품질을 검증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악의적인 참여자를 걸러내고 오류를 추적할 수 있는 투명한 검증 장치가 없다면, 분산형 AI는 오히려 신뢰를 얻기 힘들 것이다. 예컨대 부정확한 데이터나 편향된 모델이 네트워크에 투입되었을 때 이를 누가 책임지고 교정할지 불분명해질 수 있다. MIT 보고서도 '추적 가능성 부족(Lack of Traceability)'을 주요 위험 요소로 지목하며, 익명성 보장과 감사(audit)의 균형을 맞추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중앙 권위자가 부재한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자기 교정되려면, 잘못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안전장치와 책임 사슬을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여자의 신원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기여 내용의 무결성을 증명하는 암호학적 인증 기술, 그리고 모든 참여자가 정직하게 행동하도록 게임이론적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메커니즘 등이 함께 연구되고 있다. 아직 명확한 해답은 없지만, 신뢰할 수 있는 분산형 AI를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난제다.
인센티브 설계도 섬세한 접근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단순히 참여자에게 토큰이나 금전 보상을 준다고 모두가 협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친 경제적 보상이 기존의 참여자들의 자발적 동기(altruism)를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크라우드소싱 사례들을 보면, 원래는 자발적으로 데이터를 제공하거나 컴퓨팅 자원을 빌려주던 이들이 금전 보상이 도입되자 흥미를 잃는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분산형 AI에서는 경제적 보상과 더불어 평판 시스템 등 비금전적 동기부여 수단을 조합하여, 커뮤니티의 선의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인센티브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편, 분산형 AI 생태계 자체가 다시 중앙화되는 것을 방지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역설적이게도 아무리 시스템을 분산화해도 시간이 지나면 영향력 큰 참여자가 등장하고 다시 권력이 집중될 우려가 존재한다. 실제 암호화폐 분야에서도 수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탈중앙화를 내세웠지만, 정작 거래는 몇몇 거대 거래소를 통해 이루어지면서 사실상 중앙화가 재현된 바 있다. 분산형 AI 역시 초기에는 개방적으로 운영되더라도 특정 플랫폼이나 기업이 사실상의 표준으로 굳어지면 다시 데이터와 권력이 한 곳에 몰릴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상호운용성 표준을 공개된 형태로 만들고,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인 환경을 유지해야 한다. 거대 플레이어가 생기더라도 새로운 경쟁자가 충분히 도전할 수 있어야 지속적인 혁신이 가능하며, 사용자들도 특정 업체에 종속되지 않고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중앙집중과 분산화의 적절한 균형을 찾는 일도 중요하다. MIT 보고서 역시 완전 분산과 완전 중앙화 양극단 모두 고유한 함정이 있으므로, 분산화를 추구하되 부작용을 인지하고 대비하는 현실적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표준화와 사용성 측면의 숙제도 남아 있다. 인터넷이 다양한 기기와 서비스로 구성되면서도 공통 프로토콜 덕분에 하나의 네트워크로 작동할 수 있었듯이, 분산형 AI도 각기 다른 시스템들이 소통할 언어(프로토콜)를 정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핵심은 모든 참여자에게 공정한 가치 분배
결국 분산형 AI의 지향점은 AI로 인한 부가가치와 혜택을 폭넓게 공유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 최첨단 AI 기술은 거대 기업이나 일부 엘리트 연구집단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분산형 패러다임에서는 개인이 데이터와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어느 정도 되찾고, 거대 조직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AI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예를 들어 개인 스마트폰에 축적된 건강 기록이나 라이프로그 데이터를 대기업 클라우드에 올리지 않고도 AI 서비스에 활용하는 시대를 상상해볼 수 있다. 개인용 AI 비서가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이메일, 일정, 생활패턴을 학습해 맞춤 조언을 해준다면, 이는 현재 중앙 서버에 모든 정보를 업로드하는 AI 비서들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사용자는 편의를 누리면서도 민감한 정보를 스스로 쥐고 있다는 안도감을 갖게 된다.
분산형 AI는 데이터 제공자에서 최종 소비자에 이르는 모든 참여자에게 공정한 가치 분배를 구현할 잠재력도 지닌다. 사용자는 생산한 데이터로 AI 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거둬도 정작 데이터 주체들은 보상을 받지 못했다. 반면 분산형 데이터 네트워크에서는 내가 제공한 데이터나 내 기기의 유휴 연산능력이 AI 모델 향상에 기여했다면, 그에 대한 토큰 보상이나 서비스 혜택을 돌려받는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일종의 '데이터 협동조합' 개념으로, 개인들이 자신의 데이터 자산을 모아 공동으로 AI를 개발하고 그 성과를 공유하는 시나리오도 상상해볼 수 있다. 가령 환자 단체들이 각자의 의료 데이터를 직접 관리하면서 제약사나 연구기관과 협력하여 신약 개발 AI를 돌리고, 그 성과에 따라 경제적 보상을 나눠 갖는 식이다. 이러한 모델이 현실화된다면 데이터의 주권과 이익 측면에서 중앙집중형 모델보다 훨씬 포용적인 혁신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분산형 AI는 AI 개발 과정에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기회를 넓혀준다. 중앙화된 AI 환경에서는 소수 조직의 판단으로 어떤 문제를 풀지, 어떤 데이터를 활용할지 결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분산형 네트워크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데이터와 문제를 제안하고 AI 개발에 기여할 수 있다. 이는 AI 시스템이 특정 기업의 이익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나 소외된 집단의 필요까지 더 잘 반영하게 만들 잠재력이 있다. 예를 들어 농촌 지역 주민들이 모여 자신들의 농업 노하우와 환경 데이터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물 질병 예측 AI를 자발적으로 개발·활용하는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중앙정부나 대기업 주도가 아니라도, 기술이 풀뿌리 수준에서 공동체 문제 해결에 쓰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MIT 연구진은 분산형 AI가 개인을 권능(empower)하고 혁신을 촉진하여, 궁극적으로 AI의 혜택이 사회 전반에 골고루 돌아가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AI가 창출한 가치와 편익이 소수에 집중되지 않고 다수에게 돌아갈 때, 기술에 대한 신뢰와 수용성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중앙집중적 AI의 한계를 인식한 지금, 분산형 AI라는 대안은 더 민주적이고 지속 가능한 AI 생태계를 향한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글: 투이컨설팅 디지털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