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보험사에서 디지털 헬스 플랫폼으로 변신한 'Elevance Health'
1944년 설립된 Elevance Health(엘레반스 헬스, 이전 Anthem)은 미국의 선도적인 건강보험 및 헬스케어 서비스 기업으로 약 1억 1천만 명의 개인과 다양한 기업 및 정부 프로그램 대상자에게 의료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원래는 전통적인 보험사로 출발했으나 2022년에 사명을 Anthem에서 Elevance Health로 변경하면서 보험을 넘어 “평생 신뢰받는 디지털 헬스 플랫폼”으로 대변신을 선언했다.
AI 기업으로의 전환
Elevance Health의 AI 중심 디지털 전환은 2023년부터 본격 가속화되었다. 이미 이전부터 디지털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한 Elevance Health는 2020년대 초 방대한 데이터 자산과 머신러닝 역량을 통합한 플랫폼 구축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구글 클라우드와 파트너십을 체결하여 대규모 합성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 1.5~2페타바이트에 이르는 가상 의료 데이터를 생성함으로써 AI 알고리즘의 훈련과 검증에 활용하였다. 또한 보험 사기 탐지 및 맞춤 의료 서비스 개발을 가속화하였는데, 기존에도 보험금 청구 부정 행위 탐지에 AI를 사용해오던 Elevance Health는 이 합성 데이터 플랫폼으로 AI 모델의 범용성과 정확도를 높여 환자 맞춤형 의료 개입과 이상 징후 탐지를 향상시켰다.
2023년 Elevance Health는 모든 핵심 사업에 AI를 내재화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최고 AI 책임자(Chief AI Officer)로 Shawn Wang을 임명하여 AI 전략 구현을 총괄하도록 했다. 이 회사의 CEO인 게일 보드로(Gail Boudreaux)는 여러 공개 석상에서 “AI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의료 경험을 단순화하고 개인화할 거대한 기회가 있다”며 강한 의지를 표명했고, 2024년 1월 세계 최대 기술 박람회 CES 기조연설에서도 보다 선제적이고 예측적인 의료를 위한 기술 활용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Elevance Health는 Sydney Health 모바일 앱에 대화형 AI 챗봇과 개인별 의료진 매칭(Personalized Match) 기능을 탑재하여 회원들이 챗봇과 대화로 신속히 질문에 답을 얻고 자신에게 맞는 의사를 찾아 예약할 수 있도록 기능을 향상시켰다. 또한 생성형 AI 기술을 고객 응대와 행정 업무에 시험 도입하여, 방대한 정책 문서나 청구 규정을 요약∙분석함으로써 의료진과 직원들이 필요한 정보를 몇 초 내에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Epic의 Payer Platform을 자사 Health OS와 연동시켜 병원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보험자-의료진 간 데이터를 주고받는 양방향 데이터 교류를 실현하였다. 이는 입원 시점에 보험자에게 즉각 알림을 주고, 퇴원 시 필요한 정보가 곧바로 제공자에게 전달되는 등 거의 실시간에 가까운 임상협업이 가능해졌다. 또한 컨시어지 케어(Concierge Care) 프로그램 등 디지털 케어 매니지먼트에 조기 등록한 산모들은 산전∙산후 관리 지표가 유의미하게 향상되었고 회원 입원 시점에 실시간 알림을 받아 24시간 이내 관리자가 지원하는 시스템을 통해 90일 이내 재입원율 감소 성과도 나타났다.
디지털 헬스 플랫폼으로의 성공적인 전환은 곧 실적으로 나타났다. 엘레반스 헬스는 2024년 4분기 매출은 450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전년 동기 대비 6% 증가했다. 또한, 4분기 조정 순이익은 주당 3.84달러를 기록했다. 매출과 조정 순이익은 모두 시장 예상치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Elevance Health는 데이터 및 기술 인프라의 현대화,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 조직 문화 혁신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AI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 디지털 인프라 구축 및 프로세스 자동화
기존 레거시 시스템을 클라우드 기반 아키텍처로 전환하여 AI와 빅데이터 분석을 민첩하고 확장성있게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클라우드를 통해 대용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고 AI 모델을 배포함으로써 개인 맞춤형 서비스 및 챗봇 등을 제공하며, 부서 간 협업 또한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로보틱 프로세스 자동화(RPA)도 도입하여 반복적인 행정 업무를 소프트웨어 봇이 처리하게 했다. 예를 들어, 청구 서류 분류, 데이터 입력, 지급 처리와 같은 수작업을 RPA가 수행하며, 데이터 센터 모니터링에도 활용되어 서버 용량 검사 및 부하 분산이 자동화되었다. 이를 통해 청구 데이터 처리 속도가 향상되고, IT 인프라 가동 시간이 최적화되어 비용 절감과 서비스 안정성이 높아졌다.
더불어 AI 기반 예측 분석(Predictive Analytics)과 자연어 처리(NLP) 기술을 활용하여 보험 청구 데이터 및 고객과의 소통 내용을 실시간 인사이트로 전환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보험사기 탐지를 정교화하고, 고객 프로파일링을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건강 개입과 서비스 제안을 실행하여 비즈니스 의사결정의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 전략적 파트너십 활용
Elevance Health는 모든 기술을 내부에서 자체 개발하는 대신, 외부의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파트너들과 협력하여 혁신 속도를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구글 클라우드와 협력해 대규모 데이터 분석과 AI 모델 개발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프라이버시 문제 없이 활용 가능한 합성 데이터를 확보해 보험사기 방지 및 개인 맞춤형 의료 알고리즘 고도화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전자건강기록(EHR) 분야의 대표 기업인 Epic과 협업하여 보험자와 의료제공자 간 데이터 연계를 구축하였다. 이를 통해 입원 환자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보험자 플랫폼에 전달하고, AI가 재입원 위험을 예측하여 케어 코디네이터에게 알림을 보내는 방식으로 의료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키고 있다.
이외에도 Techstars, Plug and Play 등과 같은 액셀러레이터 및 스타트업 생태계와 협력하여 혁신적인 디지털 헬스 아이디어를 도입하고 있다. Anthem Digital Incubator(ADI) 프로그램을 통해 유망 스타트업에 전문가 멘토링과 자원을 제공하고, 함께 개인화∙예측∙선제적 헬스케어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들의 기술은 Elevance Health의 플랫폼에 통합되어 회원 서비스 향상 및 내부 효율화에 기여하고 있다. - 디지털에 맞는 조직 구조 및 문화 개선
디지털 전환에 맞춰 조직 구조와 문화를 전면 개편했다. 2022년에는 Carelon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복잡했던 자회사들을 통합하고, 기술, 데이터, 임상 전문성을 결합한 통합 헬스케어 서비스 조직을 출범시켰다. 이 조직은 약국 혜택관리(PBM), 데이터 분석, 건강관리 서비스 등을 통합해 Elevance Health가 자체 디지털 헬스 플랫폼으로 발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보험 상품 운영 부문에도 Wellpoint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도입하여 공공 프로그램 중심 보험 시장에서 지역 맞춤형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디지털 혁신 메시지를 대내외에 분명히 전달하고, 조직 전반이 공통의 플랫폼 비전을 공유하도록 돕고 있다. 직원들의 디지털 역량 강화에도 집중하고 있다. 보안 및 데이터 프라이버시 교육은 물론, AI 윤리 인식 교육도 실시하여 직원들이 기술을 책임감 있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디자인 씽킹과 애자일 방법론을 전사적으로 도입해 사용자 중심의 실험과 학습 문화를 조성했으며, 현장 전문가들의 피드백을 반영한 AI 도구 개발 및 파일럿 테스트 절차를 정착시켜 기술 도입의 실효성을 높였다.
강력한 AI 리더십
Elevance Health는 최고경영진이 주도적으로 AI와 디지털 혁신을 조직의 핵심 전략 과제로 삼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CEO인 게일 보드로(Gail Boudreaux)는 “AI는 신뢰의 속도(speed of trust)로 움직인다”고 강조하며, 의료 분야에서 기술 적용의 전제조건으로 신뢰 확보의 중요성을 공론화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Elevance Health는 조직 내에 Responsible AI(책임 있는 AI) 오피스를 설립하여, 건강 형평성과 기술 사이에 존재하는 복합적인 문제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Responsible AI 오피스는 개인정보보호, 준법감시, 정보보안, 데이터과학 등 다양한 부서가 협력하는 통합 거버넌스 체계로 운영되며, AI 솔루션을 설계하고 배포할 때 공정성, 안전성, 투명성 확보를 위해 엄격한 문서화와 검증 절차를 적용한다. 해당 조직의 정책과 절차는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의 AI 리스크관리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마련되었으며, 모든 AI 프로젝트에 대해 편향 방지, 정확성 검증, 보안 및 프라이버시 준수를 명시적으로 요구한다. 또한 실무 리더들로 구성된 RAI(Responsible AI) 자문위원회를 운영하여, 각 사업 부문 내에 AI 윤리 원칙이 실제 제품 설계와 의사결정 과정에 스며들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한 경영진은 AI 도입을 전담할 수 있는 전문조직과 인력을 체계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최고 AI 책임자(CAIO) 및 글로벌 최고데이터책임자(GCDO) 등의 C-level 직책을 신설하거나 강화하였으며, 기술 및 디지털 혁신 관련 업무는 CEO 직속으로 보고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사회 차원에서도 정보보안 담당 임원이 정기적으로 보안 및 기술 기반 프로젝트의 리스크 현황을 보고함으로써, 경영진이 AI 관련 위험요소를 적시에 인지하고 감독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시사점
Elevance Health 사례는 AI 기반 디지털 전환은 최고경영진의 강력한 리더십과 명확한 비전 아래 Top-Down 추진되어야 하며, 기술 혁신은 단순한 도입을 넘어 조직 전략과 깊이 통합되어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기존 금융기업들이 여전히 AI를 레거시 시스템에 접목시키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면, Elevance의 전략은 제대로 된 AI 트랜스포메이션이 무엇인지를 강하게 시사한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강력한 AI 리더십으로 AI와 데이터 전략이 ‘기술 부서’만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CEO 직속’의 전사 차원의 아젠다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AI 트랜스포메이션은 새로운 기술 도입이 아닌 ‘신뢰의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는 CEO의 언급은, 기술 채택보다 윤리와 거버넌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