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론, 닷컴 버블과 어떻게 다른가?

최근 미국에서 AI 대표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지금의 AI 열풍이 거품인지, 아니면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 전환의 전조인지를 두고 논쟁이 뜨겁습니다. 골드만삭스 데이비드 솔로몬 대표는 “향후 12~24개월 내 주식시장이 10~20%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면서 과열된 주식시장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2022년 11월, ChatGPT 등장 이후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팔란티어 등 AI 관련 주가가 폭등하고 투자 자본이 몰리면서, 1990년대 후반의 닷컴 버블을 연상시킨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AI 소프트웨어 기업인 팔란티어(Palantir)는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하면서 주가수익비율(P/E)이 200배가 넘는 현상을 보였습니다.

과거 90년대말 닷컴 버블 시대에는 별다른 수익모델이 없던 닷컴 기업들이 앞다퉈 증시에 상장했고, 공모가가 순식간에 몇 배로 뛰는 광란의 초기 상장 열기가 나타났습니다. 투자자들은 인터넷 기업들이 곧 엄청난 수익을 낼 것이라 믿었지만, 상당수 닷컴 기업들이 자본을 탕진하고도 이렇다 할 수익모델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투자 심리는 급속히 얼어붙었고, 투자자들은 기술주들을 서둘러 매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나스닥 지수를 비롯한 기술주 시장은 단 몇 주 만에 폭락했고, 2002년 10월까지 S&P 500 지수는 고점 대비 50% 가까이 급락했습니다. 닷컴 버블 붕괴는 과도한 기대가 꺾이며 투자자들의 신뢰가 급변한 결과였으며, 기업 펀더멘털 부재와 투기 심리 소진이 맞물려 촉발되었습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열풍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구글), 아마존, 메타, 엔비디아, 테슬라 등 이른바 “매그니피션트 7(Magnificent Seven)” 기업들은 2023~25년 주가 상승을 주도하면서 S&P 500 지수 상승분의 절반 이상을 견인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빅테크 기업이 2024년부터 2025년 말까지 AI 인프라에 지출한 금액은 무려 5,600억 달러에 달하는 반면, 같은 기간 AI 분야에서 거둔 수익은 약 350억 달러에 불과합니다. 이는 향후 AI로 인한 폭발적 성과에 대한 기대감으로 현재의 수익성 희생을 감수하며 투자를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AI는 거품이다? 아니다

AI 거품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재 시장에서 AI 관련 기업들의 가치가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합니다. 아직 적자인 OpenAI 등이 매출 대비 수십 배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고, 엔비디아의 시총은 미국 GDP의 15%에 육박할 정도로 상승했는데 이는 미래 이익에 대한 과도한 선반영으로, 1990년대 후반 닷컴 붐 당시를 연상시킵니다. 실제로 MIT와 스탠퍼드 연구진들이 미국 기업들의 AI 도입 사례 300여건을 추적한 결과, AI 기업 중 95%가 수익 증대 효과를 전혀 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AI 투자가 당장의 수요나 수익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러한 수요-공급의 불균형은 거품 붕괴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미국의 유명 펀드매니저이자 투자자인 마이클 버리는 자신의 X계정을 통해 "하이퍼스케일러’라 불리는 주요 클라우드 및 AI 인프라 기업들이 반도체 수명 주기를 실제보다 길게 잡아 감가상각비를 축소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최근 AI 열풍이 1990년대 말 닷컴버블과 유사하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반면 과거 닷컴 버블과 현재 AI 붐은 다르게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자본 조달 측면에서, 닷컴 시절에는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의 투기적 자금과 벤처캐피탈 자금이 무분별하게 유입되며 거품을 키웠지만 AI 투자 열풍은 대기업들이 막대한 현금흐름을 통한 투자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닷컴 시절에는 많은 인터넷 기업들은 구체적인 수익모델 없이 아이디어만으로 상장하는 등 기술 및 시장 성숙도가 낮았던 반면, AI 분야는 현재 빅테크 등 기존에 수익모델을 갖춘 기업들이 기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같은 회사들은 이미 탄탄한 이익을 내는 가운데 AI에 투자하는 것이어서, 펀더멘털 측면에서 90년대 신생 닷컴들과 다르다는 주장입니다. 요약하면, 닷컴 버블은 광범위한 투자와 초기 기술에 대한 맹목적 낙관이 결합되어 형성된 반면 AI 붐은 대기업 중심의 투자와 비교적 성숙한 기술 기반 위에 기대가 더해진 형태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시사점

거품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빅테크나 AI 기업들이 AI 분야에서 진정한 이익을 내고 있느냐, 또는 앞으로 확실하게 이익을 낼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회계상에서 장비 등 자산 수명을 길게 잡아 이익 부풀리기에 그친 것이라면 거품이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AI 거품 논쟁은 모두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일반 투자자의 경우, 혁신 기술에 대한 과도한 열광이 자산 거품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경영진 역시 AI를 도입함으로써 실질적 효율 개선이 가능한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부분을 면밀히 구분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기대에 이끌리기 보다는 자사 비즈니스 모델에 AI가 가져올 가치를 객관적으로 따져보고 실행 가능한 로드맵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시다시피 조직에서 AI 도입은 기술 혁신이 아닌  조직변화의 여정입니다. 기술적 가능성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비즈니스 가치에 대한 집요한 집중이 필요합니다.

“왜 이 AI 프로젝트를 하는가?", "AI가 우리조직의 경쟁력을 어떻게 강화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중심에 두고, 작은 성공을 발판삼아 조직의 신뢰와 역량을 키워나갈 때 비로소 AI가 기업의 지속적인 혁신 동력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수십~수백개의 AI PoC와 산발적 파일럿에 매달리지만 정작 스케일업에는 실패하는 “미시적 생산성의 함정”에 빠져습니다. 이러한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AI 적용 범위를 과감히 좁혀 소수의 핵심 영역에 집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