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의 출현과 제번스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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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비용 고효율 AI 모델의 출현

2023년에 설립된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DeepSeek-R1을 공개하면서 전 세계 IT 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딥시크를 사용해 본 사람들은 챗GPT, 퍼플렉시티(Perplexity), 제미니(Gemini) 같은 최고 AI 모델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성능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딥시크의 등장은 고성능 AI를 적은 자원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AI 개발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기술 민주화를 앞당길 가능성을 열었다.

딥시크의 등장으로 그동안 수십억 달러의 자금이 들어간 첨단 AI 모델이 '알고보니 거품'이라는 인식이 시장에 퍼지면서 한때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 거대 IT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딥시크와 같은 가성비 AI 모델이 계속 나오면 시장에서 H100과 같은 고사양 GPU의 수요는 줄어들까? 정답은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 업계에서는 160년이 넘은 경제학 이론인 ‘제번스 패러독스(Jevons Paradox)’를 근거로 딥시크의 출현이 오히려 고성능 AI 메모리에 대한 시장 수요를 증가시키면서 세계 반도체 시장을 견인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제번스 패러독스: 효율성 향상이 소비를 증가시키는 아이러니

제번스 패러독스(Jevons Paradox)는 19세기 리버풀 출신의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William Stanley Jevons)가 석탄 소비 문제를 연구하면서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1865년에 발간한 저서 “The Coal Question(석탄 문제)”에서 산업혁명 당시 증기기관과 같이 석탄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이 개발되자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석탄 소비가 줄어들기보다 증가한 사례를 제시하고 효율성 향상으로 자원 사용 비용이 낮아지면서 시장의 수요가 급증하고, 결과적으로 총 소비량이 증가한다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William Stanley Jevons), 출처 : 위키피디아
The Coal Question, 출처 : 위키피디아

제번스 패러독스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비용 감소: 기술의 발전으로 자원 효율성이 높아지면 단위 작업당 자원 소모가 줄어 비용이 낮아진다.

· 수요 증가: 비용 감소는 자원의 접근성을 높여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활용하게 만든다.

· 소비 확대: 개별 사용량은 줄어도 전체 수요가 늘어나면서 자원 소비가 증가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석탄 사용의 효율성이 높아지면, 석탄 한 덩어리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다. 이는 사실상 석탄 에너지의 비용을 낮추는 것이다. 그리고 가격이 낮아지면 수요는 더 높아진다. 연료를 경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소비가 줄어드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념의 혼동이다. 오히려 정반대가 진실이다.”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자주 목격된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엔진 기술의 발전과 하이브리드 차량의 등장으로 자동차 연비가 좋아지고 기름값 부담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이 더 자주, 더 멀리 운전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연료 소비가 늘어나는 경향이 관찰된다.

컴퓨터 역시 한때는 거실을 가득 채울 만큼의 거대한 크기였고 일반인이 구매하기에는 너무 비쌌다. 그러나 CPU(중앙처리장치) 효율성이 향상되고 크기와 가격이 줄어들자, 시장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개인용 컴퓨터는 모든 가정의 필수품이 되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딥시크의 등장은 AI 산업에서 제번스 패러독스를 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물론 제번스 패러독스에는 부정적인 면도 존재한다. 석탄 사용의 증가는 경제적 부를 창출했지만, 동시에 지구 온난화에도 기여했다. 스마트폰의 출현은 사람들을 더 빠르게 연결하고 생산적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무의미한 스크롤링에 빠지게 하여(어떤 면에서는 더 외로워지게 하였으며) 우리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딥시크와 같은 가성비 AI 모델의 등장이 AI에 대한 수요증가를 견인하면서 동시에 전력사용 증가와 같은 환경이슈도 대두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기술 변화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제번스 패러독스의 창시자인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 역시 영국이 실제로 석탄이 고갈되어 경제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러한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석유, 천연가스 등 석탄을 대신할 다른 에너지원의 출현이 석탄 수요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딥시크와 제번스 패러독스의 교차점

딥시크와 같은 저비용 고효율 AI 모델은 AI 개발 및 운용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게 된다. 중소기업, 개인, 스타트업 등 더 많은 주체가 AI를 도입하면서 사용 빈도와 범위가 급증하고, AI 서비스가 확산되면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 센터, GPU, 전력 등 인프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개별 AI 모델의 자원 소모는 줄어들지만 전체적인 AI 생태계는 확대되는 결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CEO 사티아 나델라는 2025년 1월 X를 통해 “AI 시장에서 제번스패러독스가 다시 발생한다”며, “딥시크와 같은 새로운 AI 모델의 출현이 AI 사용을 급증시켜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킬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딥시크의 AI 모델이 GPU 수요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일부 우려를 반박하며, 장기적으로 AI 인프라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한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딥시크의 '저비용 고성능' AI 모델이 등장한 이후에도 H100, H200 등 엔비디아 GPU의 AWS 가격이 상승한 바 있다.

출처: 사티아 나델라 X 계정

스탠포드대 경제학 교수인 에릭 브린졸프슨(Erik Brynjolfsson)은 제번스 패러독스를 인용하면서 “AI가 특정 직종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면, 대량 해고 대신 인간 노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트기가 발명된 후 조종사라는 직업은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파일럿에 대한 수요가 감소했을까? 더 멀리,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되면서 비행기 여행 비용이 낮아졌고 소비자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당연히 조종사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Erik Brynjolfsson 교수, 출처: https://www.brynjolfsson.com/about

Erik Brynjolfsson 교수는 AI가 영향을 미치는 직종에서 제번스 패러독스가 발생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프로그래머, 번역가, 방사선 전문의 등 다양한 직종에서 실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l  AI를 이용하여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실질적으로 향상되어야 한다.

l  근로자들의 생산성 향상이 가격 인하로 이어져야 한다. 이는 근로자들이 임금을 낮게 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거나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함에 따라 제품의 가격이 실질적으로 떨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l  소비자 수요가 낮은 가격에 반응해 폭발적으로 증가해야 한다. 이는 AI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탄력적인지비탄력적인지에 달려 있다.

딥시크의 출현이 AI 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과제

딥시크의 출현은AI 산업에 긍정적 변화와 함께 새로운 도전 과제를 제시한다.

· 긍정적 영향: 비용 절감으로 AI 기술의 보급이 가속화되며,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이 촉진된다. 특히 개발도상국이나 중소기업이 AI를 활용할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 딥시크의 등장은 단순히 자본만으로는 AI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도 기술 혁신과 효율성 극대화를 통해 거대 기업과 경쟁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기존의 선두 주자들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기회가 있음을 시사한다.

· 도전 과제: 제번스 패러독스에 따라 자원 소비가 증가하면, 전력 사용 증가와 환경 부담이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또한, 딥시크 모델의 보안 취약성(예: 탈옥 가능성)과 데이터 프라이버시 우려는 기술 확산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 국내에서도 데이터 보안과 안전성을 이유로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은행, 증권사, 롯데, 신세계 등이 딥시크 접속을 차단하였다.

기업의 접근방안

딥시크의 출현은AI 기술의 비용 구조를 재편하며 산업 전반에 혁신을 촉발하고 있다. 그러나 제번스 패러독스는 이러한 효율성 향상이 자원 소비의 감소로 이어지지 않고, 총수요를 확대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기술 발전이 자원 소비를 줄이기보다는 늘릴 가능성을 고려할 때, 기업은 딥시크의 기술을 경쟁력 강화의 도구로 활용하면서도, 제번스 패러독스가 초래할 자원 비용 증가를 사전에 대응하고 관리하여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 총소유비용 관점에서 비용 분석: AI 모델 도입 시 단기 절감 효과뿐 아니라 장기적 자원 소비 패턴을 예측하고, 총소유비용을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 지속가능 경영 전략: AI 활용을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목표와 연계하여, 효율성 향상이 환경 부담으로 전환되지 않도록 모니터링해야 한다.

· 파트너십 활용: 딥시크와 같은 기술 기업과 협력하거나, 클라우드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자원 집약적 부담을 분산시키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리하면 딥시크는AI의 미래를 밝히는 동시에, 제번스 패러독스라는 오래된 경제학적 질문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한다. 앞으로도 딥시크와 같은 새로운 AI 모델이 계속 나오면서 AI 서비스 가격 하락과 대중화로 더 많은 사용자가 유입되고 AI 생태계 저변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제번스 패러독스가 제시하는 시사점을 이해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