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틱 커머스(Agentic Commerce)’ 시대가 온다
만약 내가 원하는 물건만 쏙쏙 골라서 비교하고 최저가를 골라서 주문까지 척척 해내는 나만의 쇼핑 비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 급부상하는 ‘에이전틱 커머스(Agentic Commerce)’ 시대에는 이러한 상상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에이전틱 커머스는 지능형·자율형·고객 지향형 AI 에이전트가 쇼핑 과정을 주도하는 형태의 경험을 의미한다.
BCG에 따르면, 2025년 말까지 소비자의 절반 이상이 쇼핑에 AI 어시스턴트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생성형 AI 브라우저나 챗봇을 통해 소매 웹사이트에 유입되는 트래픽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2025년 7월 기준으로 미국 리테일 사이트로 유입되는 AI발(發) 방문자 수는 전년 대비 무려 4,700% 급증했다. 이러한 AI 경유 방문자들은 기존 방문자보다 참여도가 높아 사이트에 머무르는 시간은 32% 더 길고, 10% 더 많은 페이지를 둘러보며, 이탈률은 27%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리하면 AI 에이전트를 통해 유입된 손님들이 더 적극적으로 쇼핑에 임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에이전틱 커머스는 단순한 기술 유행이 아니라 리테일 산업 판도를 송두리째 바꾸는 게임체인저가 되고 있다. 현재는 AI 에이전트가 소비자를 보조하여 맞춤 추천을 해주고 구매 과정을 간소화하는 단계라면, 머지않아 AI들끼리 거래를 수행하는 완전 자율화 단계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태블릿 PC 좀 알아봐줘”라고 지시하면, 에이전트가 여러 브랜드 에이전트와 직접 교섭하여 조건을 비교한 뒤 최적의 거래를 체결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사람은 의사결정에 거의 개입하지 않고, AI 에이전트끼리 최적의 가격과 조건을 흥정해서 구매를 끝내는 것이다. 이러한 에이전트 대 에이전트(agent-to-agent) 커머스 시대에는 진정한 의미의 무인 쇼핑이 실현되며 소비자는 필요를 알려주는 역할만 하고, 그 뒤의 과정은 모두 AI가 대행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기존 온라인 쇼핑에서는 소비자가 일일이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고, 필터를 걸고, 상품을 비교한 뒤 직접 구매 버튼을 누르는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에이전틱 커머스에서는 이러한 수고를 AI 에이전트가 대신해준다. AI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선호도를 학습하여 취향에 맞는 상품을 추천해주고, 장바구니 담기부터 결제 처리까지 자동화해주며, 심지어 실시간으로 할인 제안이나 가격 협상까지 알아서 해준다. 가령 “주말에 친구 결혼식에 입고 갈 20만 원대 남색 정장 찾아줘”라고 대화로 요청하면, AI가 여러 쇼핑몰을 대신 검색하여 조건에 맞는 최적의 상품을 골라주고 원클릭 주문까지 진행하는 식이다.
흥미로운 점은 에이전틱 커머스가 단계적으로 진화해왔다는 점이다. 1단계가 “이 상품을 구매한 사람은 이런 상품도 봤습니다”처럼 개인화 추천에 머물렀다면, 2단계에서는 AI가 고객의 맥락과 의도를 미리 파악해 필요한 상품 묶음까지 제안하는 예측 안내로 발전하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3단계에서는 고객이 아예 결정을 위임하면 AI가 적절한 상품을 알아서 골라서 구매까지 완료해주는 위임 실행의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현재는1~2단계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곧 ‘클릭조차 필요 없는’ 완전 자동화된 쇼핑 경험이 대세가 될 전망이다.
IT 기업들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AI 쇼핑 기능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오픈AI의 ChatGPT는 최근 대화창 안에서 상품 검색부터 결제까지 한 번에 이루어지는“인스턴트 체크아웃” 기능을 선보였다. 구글도 자사의 AI 챗봇 검색 모드인 AI Mode에 쇼핑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는 AI Mode에서 상품을 비교 열람하는 정도지만, 머지않아 가격 추적부터 구매 확정 및 결제 대행까지 지원해 사용자가 구글 플랫폼 안에서 바로 쇼핑 여정을 완료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새로운 기회와 위협 동시 존재
이러한 변화는 전통 소매업체들에게 상당한 도전과 위협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가장 큰 위험은 고객과의 직접 접점 상실, 즉 탈중개(disintermediation) 현상이다. 예전에는 소비자가 브랜드 공식 온라인몰이나 매장을 방문해 제품을 찾았지만, 이제는 처음부터 AI 에이전트에게 추천을 받는다. 소비자는 AI가 골라준 한두 개의 최적 옵션만 확인하고 바로 구매를 끝내버리기 때문에, 개별 소매업체의 웹사이트를 방문하거나 다른 상품을 구경할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원스톱 AI 구매가 보편화되면 소매업체가 운영하는 온드미디어로 유입되는 트래픽이 크게 감소하기 때문에 소매업체들이 소비자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용자 행동을 파악할 기회를 잃게 된다.
또 한 가지 문제는 AI 에이전트의 구매 기준이 사람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 소비자는 브랜드 이미지나 친숙도, 이전의 브랜드 충성도 등에 영향을 받지만, AI는 가격, 평점, 배송 속도, 재고 현황 등 객관적 효율성만을 따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이 줄어들고, 가격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소매업체 입장에서는 충성고객을 잃고 브랜드 파워가 약화되는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다. 아울러 AI 중심의 쇼핑 환경에서는 교차 판매의 기회도 줄고, 그동안 소매업체의 새 수입원으로 각광받던 리테일 미디어 광고 사업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에이전틱 커머스가 본격화되면 저렴한 가격과 빠른 배송만이 경쟁력이 되는 치킨 게임 양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레거시 소매업체의 생존 전략
이제 각 브랜드는 고객이 브랜드를 인지하는 첫 접점이 검색엔진이 아니라 AI 에이전트라고 가정하고 자사 상품과 브랜드가 AI의 답변과 추천에 노출되도록 힘써야 한다. 과거 SEO(검색 엔진 최적화) 전략이 중요했듯이, 이제는 GXO(생성형 경험 최적화)로 불리는 AI 상호작용 최적화에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상품 데이터와 콘텐츠를 체계화하고 AI가 이해하기 쉽게 구조화하며, 최신 정보와 신뢰도 높은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또한 AI 챗봇이 답변을 만들 때 위키백과, 레딧, 유튜브 등 커뮤니티 자료를 많이 참고하는 경향도 있기 때문에 기업은 이러한 외부 플랫폼에도 적극 참여해 브랜드 언급량과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이외에도 대화창 속 추천 제품이나 AI가 특정 브랜드로 연결해주는 프롬프트 광고 등 새로운 광고형식이 등장할 것에 대비해 기업들은 새로운 광고 포맷에 유연하게 예산을 배정하고, 주요 AI 플랫폼의 파일럿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 효과적인 노출 전략을 선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