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STO 시대의 서막,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설립 허용

금융당국이 실물자산을 조각투자할 수 있는 장외거래소를 인가하기로 결정하면서 그동안 규제 샌드박스로 운영되던 조각투자 사업도 정식 인가를 받아 영업할 수 있게 됐다. 조각투자란 2인 이상의 투자자가 실물 자산 또는 재산적 가치가 있는 권리를 분할한 청구권에 공동으로 투자하고 거래하는 투자 형태로, 부동산, 미술품, 원자재, 음악저작권 등 다양한 기초자산을 조각으로 나눠 적은 자본으로도 투자할 수 있다.

그동안 MZ세대를 중심으로 소액 투자를 통해 다양한 자산에 접근하려는 수요가 확대되면서 조각투자는 점차 대중화되는 양상을 보여왔으나 비제도권 영역이라는 특성상 시장 참여자의 예측 가능성이 낮았고, 투자자 보호에 대한 잠재적 위험이 상존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자본시장 금융투자상품의 디지털화에 대응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제도화 기반을 마련했다. 금융위원회는 조각투자 시장이 아직 초기단계로 그 규모가 크지 않고, 유통 플랫폼이 난립하는 경우 투자자 피해로 연결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조각투자 유통 플랫폼 인가는 최대 2개까지 선정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기존에 샌드박스 지정을 받아 영업하던 펀블, 카사, 루센트블록, 뮤직카우, 에이판다, 갤럭시아머니트리, 한국ST거래 등 주요 조각투자 플랫폼들은 이번에 정식 인가를 받게 되면 제도권내에서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이들 플랫폼은 부동산 건물, 음악 저작권료, 미술품, 대출채권, 항공기 엔진 등 다양한 실물자산을 기초로 한 수익증권 상품을 발행하고 있다.

금융권 역시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SK텔레콤과 '넥스트파이낸스이니셔티브'를 구성해 STO 메인넷 개발을 마쳤고 신한투자증권은 '펄스' 프로젝트를 통해 국제 유통 생태계 확장을 준비 중이며, NH투자증권과 KB증권도 각각 협의체를 구성하여 STO 사업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하나증권은 한국예탁결제원이 주관한 ‘토큰증권 테스트베드 플랫폼 구축사업’에 참여해 핵심 기능 실증을 완료했다. 은행권에서는 NH농협은행 등 7개 은행이 'STO 컨소시엄'을 운영하며 직접 발행 및 플랫폼 개발을 추진중이다.

출처: 금융위원회 보도자료

국내 금융당국 조각투자·토큰증권 규제 타임라인

시기내용
2022년 4월금융위원회, 조각투자 가이드라인 발표
2023년 2월금융위원회, 토큰증권 가이드라인 발표
2023년 7월전자증권법 및 자본시장법 개정안 발의
2023년 8월금융감독원, 투자계약증권 증권신고서 개정안 발표
2023년 10월KRX, 신종증권 장내거래를 위한 혁신금융 서비스 신청
2023년 12월- KRX, 신종증권 장내거래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 금융위원회, 신탁수익증권 기초자산 가이드라인 발표
2024년 5월21대 국회 임기 종료, 토큰증권 법제화 관련 개정안 폐기
2024년 7월금융감독원, ‘조각투자 투자자 보호 모범규준 가이드라인’ 발표
2024년 10월22대 국회, 토큰증권 제도화를 위한 자본시장법·전자증권법 개정안 재발의
2024년 11월22대 국회, 비금전재산신탁의 수익증권 발행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재발의
2025년 9월조각투자 장외거래소(유통플랫폼) 신규인가 운영방안 안내

조각 투자 유형

보스톤컨설팅그룹에 따르면 글로벌 토큰시장 규모는 2022년 3,100억 달러에서 2030년 16.1조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PwC는 2030년까지 글로벌 토큰증권 시장 규모가 전 세계 GDP의 10%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국내는 2024년 기준 연간 거래액이 약 145억 원 수준으로 아직 초기 단계이며, 아트앤가이드, 카사, 뮤직카우와 같은 플랫폼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그중 아트앤가이드를 운영하는 열매컴퍼니는 이중섭, 김환기, 이우환, 쿠사마 야요이 등 국내외 유명작가의 작품을 조각 형태로 판매하여 미술 시장의 대중화를 시도하고 있다.

<국내 조각 투자 현황>

부동산 조각투자: 고가의 부동산을 디지털 수익증권화하여 다수의 투자자가 소액으로 소유하고, 임대수익 및 매각수익을 수취하는 형태로 카사, 소유, 펀블, 본디즈 등이 있다.

음악 저작권 조각투자: 음악 저작권료 청구권을 분할하여 매매하고, 매월 저작권 수익을 지분만큼 정산받는 방식으로 '뮤직카우'가 대표적인 플랫폼으로,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의 증권성을 인정받고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어 사업을 재개했다.

미술품 조각투자: 작품 소유권을 분할하여 다수가 공동으로 투자하는 형태로 플랫폼 기업이 작품을 선매입하거나 위탁 매매 계약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하며, 매각 시 차익을 배분한다. 테사, 소투, 아트투게더, 아트앤가이드 등이 주요 플랫폼이다.

한우 조각투자: 한우 송아지에 지분 투자하여 경매를 통해 소가 판매되면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스탁키퍼의 '뱅카우'가 있다.

명품 조각투자: 고가의 시계, 가방 등 명품의 투자 가치에 집중하여 다수의 투자자가 소유권을 분할하여 갖는 형태이다.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운영 시 리스크

  • 시장 초기 유동성 극복

조각투자 시장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 과제는 시장 초기에 충분한 거래량과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현재 국내 조각투자 시장의 연간 거래액은 145억 원에 불과하여 거래소가 출범하더라도 시장이 요구하는 매력적인 상품이 부족하거나,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거래 유동성을 확보하기 어려워 시장 활성화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현재 조각투자 상품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주식 배당소득과 동일하게 15.4%의 세금이 부과되어 투자 유인을 약화시킬 수 있다.

  • 투자자 보호 및 불공정 거래 방지

조각투자는 소액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저가 증권의 형태로 발행되며, 이로 인해 충분한 투자 정보가 공시되지 않아 투기화될 우려가 있다. 또한, 과잉 거래 유도, 인위적 시세 조정 등 불공정 거래 행위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즉각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고도화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불공정 거래 행위를 사전에 방지하고 위반 시 엄격한 제재를 가하는 제도 마련이 필수적이다.

  • 제도적 한계 극복

조각투자 상품은 '투자계약증권' 등 비정형 증권의 성격을 가지나, 이에 대한 명확한 과세 제도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러한 과세 제도의 미비는 투자자의 예측 가능성을 낮추고,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구조적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현재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비금전신탁 수익증권'의 발행 근거 조항이 부재하다는 점은 향후 제도 확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해외 동향

  • 미국: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17년에 STO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현재는 토큰이 증권에 해당하면 기존 증권규제를 그대로 적용하는 방침을 명확히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STO로 발행되는 디지털 자산이 증권으로 판정될 경우, 발행사는 SEC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거나 Reg D(사모발행), Reg A+(소액공모), Reg CF(크라우드펀딩) 등 여러 공시면제 규정을 활용해 발행할 수 있다. 현재 미국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십 개의 STO 취급 거래소가 활동중으로, 전통 금융기관(예: HSBC 등 은행), 기존 거래소(SIX 디지털거래소 등)부터 암호자산 거래소(Binance 등)와 탈중앙화거래소까지 다양한 주체들이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 유럽:  유럽연합(EU)은 2023년 3월부터 DLT 기반 시장인프라 시범체계(DLT Pilot Regime)를 시행하여, 분산원장 기술로 토큰화된 증권의 거래·결제를 일정 조건 하에 시험 운영하고 있다. 이 파일럿 제도에서는 중개기관에 대한 일부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새로운 디지털 증권거래소가 투자자와 직접 소통하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향후 3~6년 간의 실증 결과를 토대로 제도화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이미 독일, 스위스 등 유럽 각국은 국가 단위로도 전자증권법 제정이나 민법 개정 등을 통해 블록체인 기반 증권을 합법화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은 EU 차원 샌드박스와 회원국 입법을 병행하며 토큰화 자산 시장을 육성 중이다. 나아가 영국도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별도로 5년 간의 DLT 증권 시범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어, 유럽 전역에서 STO 관련 시도가 확산되는 추세다.
  • 일본: 일본은 법제 정비, 업계 자율규제, 실거래 인프라 구축을 삼박자로 빠르게 추진하여 아시아 STO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일본은 2020년 5월 자본시장법에 해당하는 금융상품거래법 개정을 통해 증권형 토큰을 제도권에 편입시켰으며, 토큰 형태로 발행되는 증권을 "전자기록 이전권리"로 정의하여 주식·채권 등 전통적 유가증권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노무라증권, SBI 증권 등 6대 증권사가 주축이 된 JSTOA는 2020년 금융청의 승인을 받아 STO 관련 상세한 업계 규칙과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감독당국과 소통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발행/공시, 판매설명서 교부, 청약철회기간, 투자자 자격기준 등 구체적인 운용규정을 마련함으로써 시장 안착을 도모했다. 최근에는 오사카 디지털거래소(ODX)가 문을 열어 본격적인 증권토큰 거래시장을 개설하는 등 인프라 측면에서도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일본은 STO를 조각투자 수단에 한정하지 않고 전통 자본조달 수단 (주식·채권의 디지털화)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하려는 전략을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장내 시장과 장외 플랫폼 모두 규제 틀 안에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전망

조각투자 장외거래소의 허용은 단순한 제도적 변화가 아니라, 국내 자본시장이 새로운 투자 패러다임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9월중 관련 법안 처리를 우선하겠다는 방침이며, 여야가 비쟁점 법안으로 분류한 만큼 처리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정무위에는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한 전자증권 발행을 위한 전자등록법 개정안과 투자계약증권의 유통 구조를 정비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 등 5건의 법안이 상정되어 있다.

조각투자 시장의 제도권 편입은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여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는 동시에, 다양한 비전통 자산을 증권화하여 금융산업의 외연을 확장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초기 유동성 부족, 세제 불확실성, 투자자 보호 장치 미비와 같은 과제는 여전히 시장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남아 있다.

결국 조각투자 장외거래소는 단순한 새로운 거래 인프라가 아니라, 한국 금융시장의 구조적 혁신을 시험하는 무대로 투자자의 신뢰와 제도적 기반, 그리고 매력적인 기초자산 발굴이라는 세 가지 축이 균형을 이룰 때, 조각투자는 ‘일시적 유행’이 아닌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글: 투이컨설팅 디지털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