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2025 ICT 산업 리뷰 및 전망; [5편] 2026년 금융 IT 시장 전망

금융회사들은 이제 기술을 보조 수단이 아닌 핵심 전략 자산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가시화될 전망이다. 2026년 국내 금융 산업은 지난 10년간 유지되어 온 견고한 규제의 빗장이 풀리고, 생성형 AI가 실질적인 업무의 주체로 부상하며, 디지털 자산이 제도권 금융의 핵심 상품으로 편입되는 '대전환의 해(The Year of Great Convergence)'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과 2025년이 이러한 변화를 위한 규제 샌드박스와 기술 검증(PoC)의 시기였다면, 2026년은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인프라 투자가 결실을 맺으며 실제 비즈니스 모델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점이 될 것이다.

2013년 대규모 전산망 마비 사태 이후, 한국 금융권을 지배해 온 '망분리 규제'는 보안을 위한 강력한 방패였으나, 동시에 클라우드(SaaS)와 AI 등 신기술 도입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그러나 2024년 8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금융분야 망분리 개선 로드맵」은 이러한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을 예고했다.

2026년은 금융위원회의 망분리 개선 로드맵이 3단계(안착기)에 접어드는 시기다. 2024년 1단계 샌드박스를 통해 생성형 AI 활용과 가명 정보 처리가 허용되었고, 2025년 2단계에서 개인신용정보까지 처리 범위가 확대된 데 이어, 2026년에는 이러한 조치들이 항구적인 법령으로 제도화될 전망이다. 특히 가칭 '디지털 금융보안법'의 제정은 기존 전자금융감독규정의 미시적인 기술 규제(Rule-based)를 원칙 중심(Principle-based) 규제로 전환하는 법적 토대가 된다.

이 법안의 핵심은 금융회사가 자체적인 리스크 평가에 기반하여 망 구성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26년에는 중요도가 낮은 업무망뿐만 아니라, 코어 뱅킹(Core Banking)을 제외한 정보계 시스템과 계정계의 일부 주변 업무까지 논리적 망분리(Logical Separation) 기술을 적용하여 인터넷망과 연결하는 사례가 보편화될 것이다. 이는 개발자들이 외부 오픈 소스 코드(GitHub 등)에 자유롭게 접근하고, 협업 도구(SaaS)를 제약 없이 활용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하며, 금융권의 IT 개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SaaS 전면 도입

망분리 규제 완화의 가장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변화는 SaaS의 전면적 도입이다. 2025년까지는 보안 관리, 고객 관리(CRM) 등 일부 비중요 업무에 한해 샌드박스를 통해 SaaS가 허용되었으나, 2026년에는 ERP(전사적 자원 관리), HR(인사 관리), 그리고 데이터 분석 플랫폼까지 그 범위가 대폭 확대될 것이다.

<금융권 SaaS 활용 허용 범위의 단계적 변화 (2024-2026)>

구분2024년 (기존)2025년 (샌드박스 확대)2026년 (본격 제도화)
허용 업무협업 도구 등 비중요 업무CRM, 보안 관리, 웹메일ERP, 데이터 분석, HR, 일부 핵심 업무 보조
데이터 처리개인신용정보 처리 불가가명정보 처리 허용개인신용정보 직접 처리 허용 (보안 조건부)
단말기내부망 PC 전용모바일 단말기 허용디바이스 불문 (BYOD 확산)
접근 방식VDI(가상데스크톱) 경유논리적 망분리 솔루션SASE(Secure Access Service Edge) 기반 직접 접속

이러한 변화는 금융회사의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 과거에는 금융지주사가 자체 구축(On-Premise)한 그룹웨어와 메신저만을 사용해야 했으나, 2026년에는 Microsoft 365, Slack, Salesforce, Workday와 같은 글로벌 표준 SaaS 솔루션이 금융사 내부망 깊숙이 침투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바꾸는 문제를 넘어, 글로벌 핀테크 기업들과 동일한 속도와 효율성으로 협업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게 됨을 의미한다.


디지털 자산의 제도화: STO와 스테이블코인의 개화

2026년은 한국 토큰증권(STO) 시장이 법적 불확실성을 완전히 해소하고 본격적으로 개화하는 원년이 될 것이다.
  • 입법 및 시행 일정: 2025년 11월 정무위 소위 통과 후, 12월 국회 본회의 통과가 유력하며, 시행령 제정 및 유예 기간을 거쳐 2026년 상반기 중 제도가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 시장 규모: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한국의 토큰증권 시장이 2026년 약 119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부동산, 미술품, 음악 저작권 등 비유동성 자산이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유동화되면서 창출되는 새로운 시장이다.

2026년 STO 시장 생태계는 '발행'과 '유통'이 엄격히 분리된 구조로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 발행 시장(증권사): KB증권, 신한투자증권, 키움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발행인 계좌 관리 기관' 자격을 획득하여, 부동산 조각 투자사나 음원 저작권 플랫폼 등과 제휴해 다양한 토큰증권 상품을 쏟아낼 것이다. 이들의 경쟁력은 얼마나 매력적인 기초 자산(Killer Content)을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
  • 유통 시장(거래소): 한국거래소(KRX)의 디지털 증권 시장과 함께, 넥스트레이드(Nextrade) 등 다자간매매체결회사(ATS), 그리고 샌드박스를 통과한 장외 유통 플랫폼들이 경쟁할 것이다. 특히 2025년 예비인가를 신청한 KRX 컨소시엄, 넥스트레이드 컨소시엄, 루센트블록 컨소시엄 등이 2026년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플랫폼 전쟁을 벌일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둘러싼 갈등과 전망

2026년 디지털 자산 시장의 또 다른 화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다. 미국이 2025년 '지니어스 법(Genius Act)' 등을 통해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연방 차원의 규제를 확립하고 시장을 양성화한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은 여전히 발행 주체를 둘러싼 금융 당국 간의 이견으로 인해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한편 네이버와 업비트의 동맹이 출범한 가운데 나머지 시중은행과 플랫폼 기업, 증권 및 카드사 등의 컨소시엄 구성이 물밑에서 전개되고 있다.

  • 쟁점: 한국은행은 통화 정책의 유효성과 금융 안정을 위해 은행만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야 한다는 '은행 중심 모델'을 고수하는 반면, 금융위원회와 여당은 핀테크 및 빅테크 기업에게도 발행 자격을 부여하는 '개방형 모델'을 선호한다. 정부는 2025년 12월 1일 시중은행이 지분 51%를 보유한 컨소시엄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 2026년 전망: 이해당사자간 이견으로 인해 포괄적인 법제화는 지연될 수 있으나, 글로벌 시장에서의 디지털 달러(USDC 등)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의 시범 사업이나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발행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이 IBK기업은행에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 협력을 제안하는 등 은행권 주도의 컨소시엄 구성이 활발해질 것이며, 이는 향후 법제화 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해석된다.

대융합 시대의 생존 조건

2026년 한국 금융 IT 산업은 앞서 살펴본 클라우드, 스테이블코인, AI라는 세 축의 흡수 속도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클라우드를 통해 속도와 유연성을 확보한 금융사는 시장을 선도할 것이고,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글로벌 결제네트워크를 선점한 기관은 새로운 수익 기회를 창출할 것이다. 무엇보다 AI를 통해 디지털 경쟁력을 높인 금융사는 맞춤형 서비스와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로 고객의 기대치를 뛰어넘을 것이다. 이처럼 기술은 더 이상 금융의 조연이 아니라 주연으로서, 금융의 정의 자체를 다시 쓰고 있다. 이러한 대변혁의 시기에 금융기관이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선결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1. 데이터 거버넌스의 재정립: 망분리 완화와 AI 도입의 전제 조건은 '안전한 데이터 활용'이다. 데이터의 수집, 저장, 가공, 폐기 전 과정에 걸쳐 제로 트러스트 기반의 보안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2. AI 윤리 및 책임성 확보: 에이전틱 AI의 오작동은 단순한 서비스 장애를 넘어 금융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AI의 판단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Explainable AI) 기술과 투명한 책임 소재 규명이 필수적이다.
  3. 디지털 자산 역량 강화: STO와 스테이블코인은 새로운 먹거리이자 미래 금융의 인프라다. 단순한 상품 출시를 넘어, 블록체인 원천 기술 확보와 유통 플랫폼 선점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4. 조직 문화의 혁신: 기술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AI와 협업하고, 데이터로 의사결정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샌드박스에서 실험하는 '애자일(Agile)'한 조직 문화가 2026년 금융사의 경쟁력을 가를 것이다.

글: 투이컨설팅 디지털 연구소